부끄러운 이직, 그리고 배운 것

000. 이직 과정으로 부터 다시 본 내 민낯

1. 임금 체불, 준비못한 이직

2024년 하반기, 나는 예상치 못한 ‘임금 체불’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새로운 이직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추석 이후 한 달 휴가를 내고 괌에서 가족과 휴가 중이었는데, 회사 동료에게서 날아온 메시지는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공지 보셨어요? 이번 달 월급 안 나온대요.”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규모도 꽤 컸고, 그룹 전체로도 큰 투자를 받았던 터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건 뉴스에서나 나오는 얘기 아냐?”라고 의심했지만,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10월 또다시 월급이 밀린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렇게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이직을 서둘러 시작해야만 했다.

2.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과정

사실상 이번이 내 ‘진짜’ 첫 이직이었다. 첫 직장인 당시 회사는 대학원 졸업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했기에 그 난도는 비교적 낮았다. 그래서 몇 군데 지원하지 않았을뿐더러 합격한 회사 중에서 골라서 올 수도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도 초반에는 여러 사람들의 추천으로 면접이 잡히며 채용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소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기에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근자감’ 덕분에, 다양한 곳에 지원해 보았다는 것이다. 미리 맞아보는(?) 경험을 했다고 봐야할까? 네카라쿠배, 대기업, 외국계 기업 등 다양한 곳에 지원하면서, 서류와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처우 협상에서 난관을 겪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아, 내가 아주 부족하구나!”를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물론, 감사하게도 추천해 주신 포지션과 회사도 모두 훌륭했기에, 최종적으로 좋은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고 가장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로 이직을 결정했기에 아쉬움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내 ‘민낯’을 마주해야 했고, 돌이켜보면 지금도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3. 어떤 점이 부끄러웠나?

이번 이직 과정을 되돌아보며, 특히 부끄러움을 느꼈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정리도 없이 주장했던 내 역량

학위 과정 8년의 연구 경력과 5년째 이어오던 실무 경험이 있음에도, 내 프로젝트 성과나 역량을 CV와 면접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내가 직접 만든 결과물과 경험을 바탕으로 CV나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정신없이 학습하고 분석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몰두했지, 이를 제대로 문서화하거나 핵심만 추려 말로 정리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단순히 연구 노트나 노트 앱 등에 휘갈겨 정리한 것들이 많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면접관으로서는 (1) 준비 없이 대충 말하는 사람 혹은 (2) 경험을 부풀려 말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과정을 통틀어 이 점이 가장 부끄럽다.

(2) 상황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만한 태도

초기 면접들이 수월하게 진행되다 보니, 앞서 말했던 ‘근자감’이 더욱 커졌던 것 같다. 특히 내 전공 분야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설계하거나 개선해 보라는 질문이 나오면, “내 전공이 이렇게 요구사항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쉽게 설계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닌데”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대답 자체가 빈약해지거나 역으로 질문만 많이 하는 형태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전문성을, 최선을 다해 어필하기보다 “네가 뭘 알아?” 같은 태도로 임했던 게 아닐까 싶어 깊이 반성한다. 정말 그런 의도는 없었으며, 부족한 나의 방어기제가 이런 태도를 만들었던 것 같다. 이 글을 보시진 않겠지만, 내 무례한 태도에도 좋은 분위기로 면접을 이끌어주신 여러 면접관님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3) 논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

이 부분이 특히 충격이었는데, 긴장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내 말의 구조가 너무 엉망이었다. 이제껏 발표나 스피치에 어느 정도 자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막상 면접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내지 못했다. 되돌아보니 학생 때와는 달리 평소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느라 글이나 말을 체계적으로 다듬을 기회가 부족했고, 내 전문 지식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정도는 다 알겠지”라는 막연한 전제도 한몫했다. 가끔 침대에 누워 면접 당시의 대답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불킥을 하고 싶어진다.

4. 이 글을 쓰는 이유

이번 이직을 계기로 정리되지 않은 커리어와 거만했던 태도, 그리고 논리적 표현의 부족이라는 세 가지 민낯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든 잘 넘어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면접장에서 번번이 부족함이 드러나고 나니, 더 이상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부끄러운 채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게 되었기에, 남은 것은 교훈과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라는 결심과 함께, “내 모든 연구와 프로젝트 경험, 기술에 대한 관점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라는 구체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 더 나아가서 예전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디밸롭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글은 변화를 위한 다짐이자 변화의 첫 시작이다. 앞으로 나는:

  1. 내가 기록한 과거의 모든 노트를 현재 나의 시각으로 다시 정리하고,
  2. 또한, 현재 하는 일과 관심 분야에 관한 생각을 정제하여 기록하겠다.
  3. 이 모든 과정을 논리적이고 명확한 글로 표현하도록 노력하겠다.

이번 이직 과정에서 ‘부끄러운 민낯’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성장을 이루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을 넘어 나를 잘 알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머릿속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도 비슷한 깨달음이나 공감의 순간이 전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성장시키고, 나아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Photo by David Iskander on Unsplash

Jong-Hyuk Im

임종혁 (Jong-Hyuk Im)

데이터 저장 기술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안 알고리즘 최적 구현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라이버시 강화 연구 후 고성능 분산 스토리지를 개발했습니다. 현재는 AI를 위한 데이터 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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